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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위충사의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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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남일 의병장의
손자 심 만 섭

함평군민신문 hppnews@hpp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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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남일 의병장께서는 1907년 12월 신광면 덕동에서 거의하셔서 이듬해인 1908년 봄 강진 오치동 전투를 시작으로, 1908년 7월 30일 영암사촌 전투에서는 영산포 헌병대장 금평산(고도히라 야마, 일본과 한반도에서 맹위를 떨친 일선 장교였고 전공훈장을 받음)을 사살하시는 등 크고 작은 전과가 매우 많으셨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8월 1일 나주반치 전투에서 일군경은 금평산의 시체를 찾아 광주공원에 매장하였습니다. 1909년(기유년) 가을에 순종의 교지가 내려지자 의병을 해산하고 화순군 이만리에 있는 바람재 바위굴에 피신하고 있을 때 친일파의 밀고로 10월 9일 일본군 사다케 대위가 이끄는 47명의 임시한국 파견대에 체포되셨습니다. 심남일 의병장을 체포하자 일제는 바로 다음날 임시한국파견대의 임무를 종료하게 됩니다. 심남일 의병장은 일제의 마지막 퍼즐 즉, 한일 병탄의 고갯길을 넘은 마지막 관문이었던 것입니다.

장흥헌병대의 심문을 마치고 광주재판소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일군경이 심남일 의병장을 광주공원에 묻혀 있는 금평산의 무덤 앞으로 끌고가 사죄하라고 하자 “내 조국을 침입한 놈들이 누구를 죄인 다루듯 하는가.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잘못했다고 빌 것인가?” 라고 항거하시다가 현장에서 무수한 구타를 당하고 당시 공원에 몰려든 많은 광주시민들이 이 사건을 마음에 두게 됩니다. 광주 감옥을 거쳐 대구 감옥으로 이감하여 끝까지 굴하지 않으므로 1910년 10월 4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셨습니다.

여기서 다시한번 호남의병의 의미를 새겨 보겠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주의의 칼끝은 날카롭고 총알은 빠르고 정확해서 우리의 심장을 쪼개는 데 부족함이 없는 지경이었지만 분연히 일어섰던 겁 없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호남의병들이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에 맞선다는 것은 곧 죽음 뿐 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들 침략자들과 같은 하늘을 받들고 동시에 나의 절의를 지키는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개 돌려 구차히 사는 것보다 서서 싸우는 길을 택한 분들이 바로 호남의 의병이셨습니다.

정미의병을 후기의병 또는 마지막 의병으로 표현합니다. 정미년 군대해산과 고종 퇴위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의 불길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전국 각처의 의병을 무너뜨리고 이제 한일병합의 야욕을 채우려는 일제에 마지막으로 남은 걸림돌이 바로 호남의병이었습니다. 저들 표현대로 일제의 총칼의 무서움을 모른다는 호남의병입니다. 그들에게는 임진년의 오욕스런 역사를 극복해야 하는 열등의식의 발로이기도 했던 호남의 의기를 하루빨리 꺾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909년6월 일본 본토의 정규군 2개 연대 2000여명을 부산항을 통해 증파하기에 이릅니다. 그만큼 호남의병의 지형지세를 이용한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당시 목숨을 담보하고 일제에 맞서 싸우셨던 의병 한분 한분은 차갑고 어두운 역사의 강에 기꺼이 몸을 던지셨습니다. 어둠의 강줄기 한 굽이마다 의병의 희생이 흩뿌려지고 스러지는 횃불 하나하나가 암흑의 강을 밝혀 그 강을 건너는 백성들에게 향도가 되었으니 거친 파도와 흑암의 소용돌이를 지내고 마침내 대양에 이르러 광명한 해가 비친 오늘,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심남일 의병장께서는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을 앞두시고 진시황의 항복을 받기 위해 함양으로 떠나는 형가의 역수가를 인용하셔서 시로 표현하셨습니다. 만고에 처량한 역수가라 하셨는데 할아버지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없는 유무형의 유산이 있습니다. 심남일 의병장의 후손으로 당연히 하여야 할 것에 대한 거룩한 의무는 오늘 나를 있게 한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강줄기 소용돌이마다 안타까움이 절절하고 특히나 근대사에서 벌어진 제국주의의 약육강식이라는, 초원에 서식하는 야수의법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좌우하였던 절체절명의 시기를 대할 때는 언제나 가슴이 먹먹합니다.

오래전 광주공원 충혼비를 세울 때의 얘깁니다. 심남일 의병장의 손자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할아버지의 충혼비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기로 하고 1967년 당시 대학을 다니면서 연탄배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탄배달로 돈이 모이면 광주향교에 찾아가 기부하기도 하고 옛날 심남일 의병장이 광주공원에서 고초 당한 얘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광주공원 심남일 의병장 충혼비의 시작은 광주향교의 어르신들께서 뜻을 모아주신 설립 발기인회였습니다. 발기인회에서 여러 사회 유력인사들에게 충혼비 건립취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충혼비가 건립되게 되었습니다.

일제때 광주공원에는 일본놈들의 신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신사가 있던 자리에 충혼탑이 세웠졌는데, 그런 역사적 명암이 교차하는 광주공원은 우리가 새겨보아야 할 현대사의 아픔과 영광이 함께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꽃 피는 좋은 봄이 왔습니다. 혹시 광주공원에 가거들랑 심남일 의병장 충혼비에 들려주시면 후손으로 감사한 마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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